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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 기사명
    제9장 제세주의 귀천[第九章 濟世主 歸天]

    원문보기 원문/국역

  • 날짜
    음력 1864년 03월 10일
일러두기

제세주가 밤에 꿈을 꾸니, 태양이 쏜 한 광선이 왼쪽 다리에 닿아 불로 변하여 밤새도록 사람 인(人) 자의 모양을 이루었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과연 한 자줏빛 검은 햇무리가 사흘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으로 상서롭지 않음을 알고, 천주(天主)께 고하여 강화(降話)의 명을 거두어 줄 것을 빌었다.
12월 9일. 대신사가 제세주에게 고하기를 “금년 새해에는 모시고 지내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라고 하니, 제세주가 “그대의 말은 비록 간절한 마음에서 나왔지만 이처럼 오래 머물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대신사가 두세 번 간청했으나 제세주가 더욱 굳건한 뜻으로 가라고 하여 대신사는 드디어 부득이 물러갔다.
이튿날, 한 문도가 경주부에서 와서 고하기를 “들으니, 조정에서 체포하라는 명령이 있었답니다. 화를 장차 헤아릴 수 없으니 청컨대 선생께서는 미리 면하시기를 도모하기 바랍니다”라고 하니 제세주가 웃으면서 “도의 운수가 하늘에 달렸고 화와 복은 천명에 있으니 때 맞춰 오고가는 것을 내 익히 알고 있다. 다만 순리대로 받을 뿐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아아, 제세주는 하늘을 대신하는 신령으로 첫 번째로 세상에 나와 어두운 길에 던져진 세상의 도를 이끌고 고해(苦海)에 빠진 중생을 널리 구제하여 어두움을 등지고 밝음으로 나오게 하며 악을 버리고 선으로 나아가게 하고 위태함을 도와서 편안케 하며 화를 바꾸어 복되게 하니, 실로 만 가지를 알고 만 가지에 능함을 구비한 더할 바 없는 신력이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 세상 사람들은 용담(龍潭)의 최선생으로만 알았지 제세주가 된 것을 알지 못하였다. 제세주의 예언과 신명을 혹은 최복술(崔卜術)로 또는 와전되어 복술(福戌)이 되기도 했다 일컬으며, 그 시천(侍天)의 송주(誦呪)를 혹은 서학(西學)이라고 가리키며, 그 두 여종을 놓아 한 여종은 며느리를 삼고 한 여종은 양녀로 삼은 것을 윤상(倫常)을 무너지게 했다고 이르고, 백오(百五) 염주와 주문 부적으로 병을 낫게 한 것을 두고 좌도로 바른 것을 어지럽혔다고[左道亂正] 이르며, 비결을 내리게 하고 상제(上帝)와 문답한 것을 두고는 요사스런 말로 중생을 현혹시킨다고 이르며, 입도해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을 두고는 죄가 임금을 참람함에 관계된다고 이르며, 일마다 하늘에 고함을 두고는 상천(上天)을 모독한다고 이른다. 문도와 신앙하는 자를 제외하고는 육친(六親)이 원수와 같이 보며 온 세상이 도둑과 같이 배척하였다. 말(語)에 이르되,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기도 하지만 하늘이 뜻을 정하면 능히 사람을 이긴다고 했다. 제세주의 지극한 어짐과 지극한 자애의 성령으로도 또한 뭇 사람의 미망을 감화시키거나 뭇 비방을 소멸시키지 못하고 마침내 극형의 액운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천명을 즐기고 알아 유유히 의리에 나아가서 일찍이 그 사이에서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만일 큰 성인이 저절로 정각을 이룬 것이 아니었다면, 그 누가 이에 능히 참여할 수 있으리오. 많은 사람이 비록 “하늘을 이길 수도 있지만 하늘이 정하면 사람을 이긴다”라고 하니, 눈을 씻고 기다려 보아야 할 것이다.

그날 밤 밝은 촛불을 켜놓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마치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선전관(宣傳官)인 정구용(鄭龜鎔)이 내려와 경주의 관군 수백 명을 거느리고 용담 마을 입구를 포위하고 매우 다급하게 체포했다. 같은 시간에 제세주의 맏아들 세정(世貞)과 문도들 수십 명도 잡혔다.
일행이 영천군(永川郡)에 이르자 나졸들이 거짓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고 지목을 하면서 언사가 매우 불공스러웠다. 제세주가 탄 말의 말굽이 땅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자 나졸들이 두려워서 용서를 비니 이에 말굽이 떼어졌다. 그 때에 각지의 교인들이 제세주가 체포되었다는 말을 듣고 서로 통지해서 모시고 전송하려고 한꺼번에 새재에 모여든 자가 수천 명이었다. 선전관이 이 기별을 듣고 드디어 길을 바꾸어 충청도 보은(報恩)을 가는 길을 따라 경기도 과천군(果川郡)에 이르렀다.
조선 철종(哲宗)이 승하했다는 말을 듣고 비록 묶여 있는 몸이었지만 제세주가 애통함을 그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선전관이 다시 칙령을 전하기를 “경주의 동학괴수 최아무개를 다시 본도(경상도) 감영에 가두어 문초를 하고 계문(啓聞)하라”고 하였다. 이에 과천에서 다시 길을 돌려 새재에 이르자 문도 수백 명이 길가에서 맞이해 울음을 삼키면서 탄식했다. 이달 29일에 유곡(留谷, 새재 언저리에 있는 골짜기마을)에 이르러 설을 쇠었다.
갑자년(1864년) 전 조선 이태왕 원년. 정월 6일에 대구감영 감옥에 구금을 하고 나서, 순찰사(巡察使) 서헌순(徐憲淳), 상주목사(尙州牧使) 조영화(趙永和), 지례현감(知禮縣監) 정기화(鄭蘷和), 산청현감(山淸縣監) 이기재(李沂在)를 명사관(明査官)으로 임명하여 고문을 하였다. 심문할 때 마침 폭우가 쏟아져 곧바로 심문하지 못하였다. 이에 관아에 속한 하인배에게 문도들이 엿보는 것을 엄히 금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제세주가 잡힌 지 며칠 뒤에 감영의 군교와 옥졸 50여 명이 해월(海月) 대신사가 거처하는 집을 둘러싸고 급하게 찾았으나, 제세주가 의관을 정제하고 편안하게 앉아 마음으로 염송하는데도 여러 군교와 옥졸들이 모두 보지 못했다.
제세주가 드디어 편안한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서 포위를 풀고 나왔으나 또한 아는 자가 없었다. 제세주가 드디어 몰래 성안으로 들어가서 백방으로 주선하여 현풍(玄風) 사람 곽덕원(郭德元)을 집종으로 꾸미도록 하였으며, 아침저녁으로 주께 전달한 밥을 겨우 먹었다.
20일. 순찰사 서헌순이 비로소 선화당(宣化堂)에서 법정을 열고 묻기를 “너는 무슨 까닭으로 무리를 부르고 긁어모아서 풍속을 어지럽혔느냐?”라고 하자 제세주가 정색을 하고 소리를 높혀 말하였다. “마음의 주인은 선(善)이요, 말의 주인은 덕(德)이요. 기필코 선과 덕으로 사람을 가르쳐 왔는데 어찌 풍속을 어지럽혔다고 하오. 이 한 몸을 던져 길이 우리 도를 믿어 혼미한 생령을 구제하려는 것이 진실로 내가 마음을 쓰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서헌순이 묵묵히 조금 생각하더니 다시 감옥에 가두라고 지시하고 장계를 갖추어 조정에 알렸다.
10일 뒤에 법정을 다시 열고 심문을 하면서 겨우 형장 몇 대를 때리는데, 갑자기 우레와 같은 굉음이 울리면서 모든 건물이 크게 흔들리니 모든 사람들이 어쩔 줄 몰랐다. 순찰사 또한 크게 놀라서 드디어 형장을 정지하고 다시 가두게 지시했다.
제세주가 비록 형벌을 받으면서 고초를 겪었으나 다만 천명을 믿고 더욱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어 조금도 겁을 내는 기색이 없었다. 기필코 우리 도를 보존해 전하려고 기약하고 스스로 “등불이 비치는 물위는 한 점도 틈 없이 밝고, 기둥은 마른 형체 같지만 힘이 남아 있네” 라는 한 구의 시를 썼다. 또 “높이 날아 멀리 달아나라[高飛遠走]”라는 넉 자를 쓰고 한 개의 종이 노끈으로 만들어 담뱃대에 넣어서 몰래 해월대신사에게 전달케 했다. 대신사가 담뱃대를 쪼개 살펴보고 그 숨은 뜻을 알았는데 곧 기미를 따라 변고에 대처해 도를 전하고 덕을 펴라는 비밀 가르침이었다. 마침내 하늘을 우러러 길게 울부짖으면서 행장을 꾸려 김춘발(金春發)과 함께 강원도 태백산 아래로 몸을 숨겼다.
2월 29일. 순찰사가 사유를 갖추어 조정에 계문했는데 요사스런 말로 민중을 현혹한 죄목으로 법조문을 살펴서 판결을 했다고 하였다. 드디어 대구부 아미산(峨嵋山) 아래에서 죽음을 만났는데 천지가 어두침침하고 구름이 낀 해는 아른아른 했다. 때는 제세주가 강생한 지 41년 3월 10일이었다.
외사씨(外史氏)외사씨(外史氏)가 가로되 “성인(聖人)이 탄생하지 않았을 적에는 도(道)가 하늘에 있으며, 성인이 탄생했을 적에는 도가 성인에게 있지만 성인이 가셨을 적에는 도가 경(經)에 있다”라고 했다. 지금 우리 제세주는 무극대도(无極大道)의 참된 깨달음으로 도를 창설한 대성(大聖)인데 하늘을 대신해 탄강하여 이로써 도를 행했으니 곧 도를 행한 하늘이다. 하늘을 짝해 돌아가서 그로 하여금 덕(德)을 펴게 한다면 또한 덕을 펴는 하늘이다. 불행하게도 도의 운이 막히고 인심이 찢어지고 갈라져서 갑자기 금목(金木)의 화를 입었다. 도가(道家)에는 검해(劍解) 수해(水解)의 승화가 있지만 진화(眞化)가 아니며 석씨(釋氏)에는 다비(茶毗)와 반수(攀樹)의 입적(入寂)이 있지만 참 입적이 아니다.
제세주가 탄강할 적에 구미산(龜眉山)이 사흘 동안 크게 울렸으며 제세주가 돌아갈 적에 쌍무지개가 연못에 뻗쳐 드리우고 오색구름이 집을 둘러싸 그 한 기운의 감응이 하늘과 더불어 하나가 되었으니 감도 없고 옴도 없었다. 장차 천지를 창건하면서 귀신에게 물어질저귀신(質諸鬼神) 백세(百世)를 징험하니 제세 교조(敎祖)가 됨이 진실로 그러하다.
사흘이 지나 순찰사가 특별히 너그러운 조치를 내려서, 맏아들 세정(世貞)에게 시체를 가져가서 매장하라고 했다. 세정이 문도인 김경숙(金敬叔)・김경필(金敬弼)・정용서(鄭用瑞)・곽덕원(郭德元)・임익서(林益瑞)・전덕원(全德元) 등과 함께 제세주의 유체를 거두어서 상여에 모시고 경주 선영으로 향했다. 상여가 자인현(慈仁縣) 서쪽 후연(後淵)의 점막에 이르자 점주가 비분강개해서 눈물을 뿌리며 상여 멈추기를 간절하게 요청했다.
이곳에서 유숙하면서 깨끗한 방을 얻어 영구를 옮겨 모셨다.
이날 쌍무지개가 연못에 드리웠고 채색구름이 집을 둘러쌌다. 유체에 작은 온기가 있었지만 칼자국은 전혀 없었으며 붉은 줄이 둥글게 둘러쌌는데 특이한 향기가 사람들에게 풍겼다. 마치 회생하려는 듯해서 문도들이 엎드려 하늘에 기도했다. 사흘 동안 이와 같이할 적에 무지개가 사라지고 구름이 흩어졌으며 얼굴이 갑자기 변했다. 드디어 함옥(含玉)과 염습(殮襲)을 하고 길을 떠나셨다. 문도들은 화가 미칠까 염려가 되어 중도에서 모두 절을 하고 돌아갔는데, 오직 제세주의 장조카 세조(世祚)만이 중도에서 배행하여 제세주의 양녀 사위인 정울산(鄭蔚山, 이름을 잃어버렸다)의 집에 이르렀다. 3월 17일, 밤을 타서 가정(柯渟) 옛 마을의 구미산 아래에 있는 용담 앞의 언덕인 교곡전(橋谷田) 둔덕의 위에 임시로 모셨다.
제세주의 맏아들인 세정(世貞)은 강원도에서 떠돌이생활을 하다가 양양군(襄陽郡)에서 잡혀 마침내 형장을 맞고 그 여독으로 죽었으며 작은 아들인 세청(世淸)은 병으로 죽었다. 제세주의 사속은 다만 세 명의 어린 며느리가 있을 뿐이다.
동시에 잡힌 문도들은 혹은 그대로 감옥에 갇혔다가 죽기도 했고 혹은 멀리 귀양을 가서 배소(配所)에서 죽기도 했다. 모두들 동학(東學)이라는 죄목을 피하려고 주문을 고치기도 하고 교명(敎名)을 바꾸기도 하였으나, 그 설이 여러 갈래여서 요령을 얻기가 어려웠다. 오직 해월대신사만이 홀로 그 종지를 얻어서 뚜렷이 시천교(侍天敎) 제2세 교조(敎祖)가 되었다.

주석
육친(六親) 여섯 가지 친족 곧 부모 형제 처자이다.
『사기(史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국상이 났을 때에는 서울에서 죄인 신문을 일시 중지하고 지방장관인 관찰사에게 위임한다. 최제우도 이 제도에 따라 다시 경상감영으로 이첩되었다.
지방 관아에서 죄인 조사를 한 뒤에 그 관련사실을 중앙에 보고해 결정을 받는 것이다.
이태왕은 고종(高宗)을 말함. 태왕은 이왕(李王)으로 호칭하는 순종(純種)이다. 일제가 이왕직(李王職)을 설치하고 조선 왕가의 호칭을 낮춘 용어이다.
중요한 사건을 특별히 조사키 위해 감사가 보낸 임시 관원이다.
원문은 “등명수상무혐극 주사고형역유여(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인데 동학이 죽지 않고 퍼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해월에게 도통 전수를 하려는 뜻. 해월이 체포되면 도맥이 끊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미산은 달성공원이 위치한 뒷산. 현재 최제우의 동상이 건립되어 있다.
외사씨(外史氏) 개인자격으로 역사기록을 쓰는 자. 사관과 구분해 불렀다.
금쇠와 나무로된 형구를 말한다.
검해(劍解)는 칼로 수해는 몸을 물에 맡겨 혼백이 떠남으로 신선이 되는 술법이다.
다비는 시체를 화장하는 일, 반수(攀樹)는 인도의 승가난제(僧加難提)가 나무를 붙잡고 열반한 것을 말함. 석가의 열반을 비하한 것임.
질저귀신(質諸鬼神) 귀신에게 묻는다는 뜻이나 점을 침을 이름.
함옥(含玉)은 장례 때 죽은 사람의 입에 넣는 옥, 염습(殮襲)은 시체를 묶는 것.
최제우의 자녀들은 역적의 자식이라 하여 관아의 추적을 받았는데 그 여파로 혈손이 끊어졌다.
천도교와 시천교에서는 최시형을 2세 교조로 내우나 다른 교파에서는 각기 종지를 내세워 새로 교주를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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