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목사에게 보내는 편지 아홉 번째[與洪牧書九]
어제 산에 있으면서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 관군(官軍)을 맞이하였으니, 사람들이 즐거워 할 뿐만 아니라 신명도 감동하였습니다. 이 보잘 것 없는 몸은 더욱 부끄럽고 두려우니, 장차 어떻게 나의 도리를 다하여 지기(知己)의 은혜에 보답하고 백성을 보호하려는 바람을 이루어 나라를 위한 충성을 바치겠습니까? 천 번을 생각하고 만 번을 헤아려보아도 죽을 곳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서울에서 돌아오신 뒤로 나라 일로 애쓰시는 대감에게 신의 보살핌이 있기를 바랍니다. 남쪽으로 정벌나간 군사들의 승전보는 이미 도착하였습니까? 내가 헤아려보건대, 지금 호서(湖西)의 여러 고을들은 이미 귀화하여 서산(瑞山)과 태안(泰安) 이북은 우선 급박한 사태가 안정되었으므로 흩어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쉬게 하여 기력을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 현재의 급선무입니다. 그리고 약간의 적의 잔당들은 걱정할 바가 못되니 군대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머물러 있게 하여 위망(威望)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어찌 고립된 군대를 멀리 출정시켜 궁지에 몰린 도적과 각축하게 하여 하루아침의 요행스런 이익을 바라겠습니까? 그리고 유회소(儒會所) 보발(步撥)의 막사도 점차 철거하여 민폐를 없애도록 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유군(儒軍)이라고 자칭하며 적을 잡는다는 핑계로 종종 마을을 침학(侵虐)하니, 백성들의 가산이 탕진되고 부녀자들이 욕을 당하였다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져있습니다. 이 부근으로 말하자면, 대동(大洞), 두현(杜峴) 및 용호(龍湖) 등지가 특히 심합니다. 일벌백계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될듯 하니 이 점 역시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남사(南史) 홍령(洪令)을 본진(本鎭)에 발령하고 김(金)과 한(韓) 두 사람에게 정려(旌閭)를 내려주는 은전(恩典)을 시행하여, 노고에 보답하고 충성을 기리며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 유감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 형은 더욱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정의 예우는 더욱 융숭해지고 군국(軍國)의 신뢰는 더욱 두터워졌으며 공업은 날로 왕성해지고 위망은 날로 드러났으니, 옛 사람이 이를 맡았더라도 어렵게 여겼을 것입니다. 다만 처음과 마찬가지로 마지막까지 조심하며 만년의 절조를 잘 보존하여야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고 집안의 명성을 떨어뜨리지 않으며 옛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고 백세(百世)토록 전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형의 일을 생각할 때마다 마치 내가 직접 당하는 것 같아서 항상 지나친 걱정을 면하기가 어렵습니다. 말은 비록 외람된 것 같아도 마음은 용서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장공예(張公藝)에게 화목을 권유하면 장공예는 단지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라고만 하였습니다. 고명하신 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어머니의 병환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데다 산보(山堡)의 일까지 겹쳐서 날마다 고민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합니다. 태형(台兄)의 지나친 사랑을 잘못 받은 데다 향인들의 간절한 뜻을 저버리기 어려워서 자신의 지혜를 헤아리지 않고 경솔하게 큰일을 벌였으나 일은 막중하고 힘은 약하니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오직 무기에 관한 일은 가장 긴급한 사항인데 개인적인 역량으로 만들 수도 없는데다 또 갑자기 마련할 수도 없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목영(木榮)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며, 그렇게 한 뒤에야 성보(城堡)의 형태가 갖추어질 수 있으니 깊이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이 산보는 본주(本州)의 진산(鎭山)으로 그 중요성이 각별하니 다른 유회소(儒會所)와 일률적으로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무기 등에 관한 사항도 어찌 아까워하며 지급하지 않아 허술하다는 탄식을 자아낼 수 있겠습니까? 대포(大炮) 10대, 소포(小炮) 100대, 화약, 연환 등의 물자를 보내서 보관해둔다면, 산보를 방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내가 당연히 산보의 병사들을 데리고 의기를 발하여 어려움에 달려갈 것입니다. 이때 어찌 맨주먹을 휘두르며 칼날에 맞설 수 있겠습니까?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산에 제사를 지낸 제문(祭文) 2통과 2의사(義士)에 대한 애사(哀辭)를 함께 베껴서 보내드립니다. 뜻은 취할 만한 것이 있으나 문장은 볼만한 것이 없으니 부끄럽습니다. 읽고 나서 바로 찢어버려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도록 하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나머지는 일간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만 줄이며, 동생이 올립니다.